2023.02.24/ #보관소 #오래된 사진 #안양1번가 #유신 #sine1972/ 10월 안양초등학교 캠퍼스에서 개화연예인 공연
사진출처 : 시흥 100년의 흔적
1972년 안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개화광복 10월 공연이다.
10월 유신선언 이후 박정희 정부는 전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10월 복직을 밝히는 모바일 예능교실이 주관한 안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물론 당시 안양읍 사람들의 동원은 광범위했다.
10월 유신선언 이후 박정희 정부는 전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10월 복직을 밝히는 모바일 예능교실이 주관한 안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물론 당시 안양읍 사람들의 동원은 광범위했다.
1972년 10월 17일 서울 시내에 탱크가 나타나 사령부 앞에 멈췄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하고 연설을 했다.
유신(維新)은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롭게 한다는 뜻이었다.
국민의 염원인 남북통일과 한국식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즉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첫째, 국회가 폭력적으로 해산되고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또 긴급 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에 부쳐 새로운 헌법질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해결책은 물리적 폭력이었습니다.
오후 7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유신헌법에 입각한 유신시대는 1979년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이 기간 동안 박정희는 모든 행정, 입법, 사법권에 대한 절대 권력을 쥐고 사실상 종신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이런 유신체제에 대해 국민적 반발은 당연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유신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절대권력을 근거로 이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고 탄압하였다.
9차례나 시행된 대통령 긴급조치의 초헌법적 권한이 이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