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포스터와 혐오스러운 소나무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그 소문은 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들리던데. 오랫동안 주변에만 머물러 있던 영화가 어느 날 마음을 스쳤고 영화가 끝났을 때 정말 많은 감정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이런 식이었구나. 이 독특한 영화는 코가 막히고 슬퍼졌으며 여운을 남겼다.
혐오스러운 마츠코
영화는 제목 그대로 마쓰코의 일생을 다룬 것으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마쓰코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마쓰코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조카 쇼가 아파트를 찾아 쓰레기장 같은 집을 정리하면서 이모의 사진을 발견한다.
이웃 사람들은 마쓰코를 역겨운 마쓰코라고 부르고, 마쓰코의 동생이었던 마쓰코의 아버지는 아무리 봐도 보잘것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고모가 떠난 곳은 처참했고 쇼는 담당 형사를 통해 고모가 중학교 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였던 그녀는 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그 사실이 쇼만큼 궁금해질 때 영화는 마쓰코가 중학교 교사 시절이었던 과거로 끌고 간다.
수학여행 때 제자가 저지른 절도사건, 그때였다.
마쓰코의 인생이 꼬여온 결정적인 순간은. 물론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잘못된 행동과 선택도 있었지만. 그 선택 또한 어린 시절 아픈 여동생으로 슬퍼했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마쓰코의 행동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마쓰코는 학교에서 해고되고 집도 떠나게 된다.
사랑 또한 인생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츠코의 인생은 작가 지망생, 작가 지망생, 도둑고양이, 이발사, 요이치의 5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지만 이발사를 제외하고는 남성은 자살 불륜 매춘 살인 폭력 등 최악의 시련을 그녀에게 안겨준다.
이것도 그녀가 선택한 것이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들과 함께였기에 마쓰코는 행복했다.
오히려 사랑이 멀어질 때 더 불행해 보였다.
신기했다.
그들은 그녀의 사랑을 간파하지 못했고 그녀를 이용해 무시했을 뿐이었는데. 진정한 남자를 만났다면 그녀도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았을 테지만, 행복한 사랑이 될 뻔한 이발소와는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헤어졌고, 요이치는 너무 늦게 그녀의 사랑을 깨달았다.
요이치는 감옥에서 종교를 만나 신의 의미를 깨닫고 그녀의 사랑이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 신과 같은 존재였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 때문에 고생하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넘어뜨렸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었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쓰코가 출소한 뒤 미용사로 혼자 평범하게 살던 시절도 있었다.
사랑으로 위태로워 보였던 삶보다 평범하고 안정적이지만 마쓰코는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고 불행했다.
요이치를 만나 폭력에 시달리고 다시 사랑으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마쓰코는 행복했다.
마쓰코의 절친한 친구였던 메구미는 그녀의 사랑이 지옥이라며 빠져나오라고 말하지만, 마쓰코는 지옥에 있어도 그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마츠코는 지옥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헤어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 전에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메구미가 마쓰다코의 선택이 진실임을 깨닫고 이해했듯이, 나도 마쓰다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사회의 잣대로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을 생각했다.
사람마다 사고방식과 인생이 다르고 행복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은 동화처럼, 인생은 꿈대로 되지 않는다.
마쓰코가 어렸을 때 본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던 공연처럼 현실은 동화처럼 인생은 꿈과 같지가 않다.
한 인생은 메구미의 말처럼 “너무 잔인한” 마츠코의 인생처럼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이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이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동경하지.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백조가 되고 싶었는데 깨어나면 시커먼 까마귀가 되어 있지.나, 단 한 번 다시 살 수 없는 삶인데, 이게 동화라면 너무 잔인해.
쇼와 메구미의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될 마츠코
마쓰코는 중학교에서 잘렸고 아버지와 여동생에 대한 사랑이 순간 원망의 감정으로 바뀌어 가족과 고향을 떠났다.
비록 고향을 떠나더라도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아버지는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마쓰코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아버지와 여동생을 사랑했지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마쓰코는 비참하고 고독한 죽음을 맞았지만 마지막 모습만으로 그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쓰코는 누군가는 징그럽다 하찮은 인생이었다고 기억하겠지만 요이치에게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한 소중한 사람이었고 메구미에게는 멋진 친구였고 쇼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산 숙모로 기억될 것이다.
마쓰코는 세 사람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쇼트에 은혜가 있어 그녀의 죽음이 외롭지 않고 좋았다.
넷플릭스 4월 26일(토)